"스타일의 완성은 구두!"라고들 하죠. 특히 아찔한 높이의 하이힐은 많은 여성분들의 '워너비 아이템'이자 자신감을 높여주는 마법 같은 존재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만약 이 하이힐이 원래 남성들을 위한 신발이었다면 믿으시겠어요? 그것도 아주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 말이죠! 오늘은 우리가 몰랐던 하이힐의 놀라운 반전의 역사 속으로 함께 떠나보려고 합니다. 😊

전장에서 시작된 하이힐의 역사 🏇
하이힐의 역사는 놀랍게도 10세기경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의 남성 기병들로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기병들은 말을 탈 때 등자에 발을 안정적으로 고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흔들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때 신발에 굽을 추가 하니 등자에 발이 딱 걸리면서 안정적인 자세 유지가 가능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이힐의 시초랍니다.
이처럼 하이힐은 처음에는 아름다움이 아닌, 오직 '실용성'을 위해 탄생한 남성들의 전투 장비였던 셈입니다. 정말 의외이지 않나요?
페르시아 기병들이 신었던 굽 있는 신발은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점차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말을 소유할 수 있는 상류층 남성들만이 신을 수 있는 신발이었기 때문이죠.
권력의 상징이 된 남자의 하이힐 👑
17세기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하이힐이 남성 귀족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태양왕' 루이 14세가 있었습니다. 163cm의 작은 키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그는 무려 10cm에 달하는 하이힐을 즐겨 신으며 자신의 권위를 과시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구두 굽과 밑창을 붉은색으로 칠해 왕족만이 이 색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명품 구두 브랜드 크리스티앙 루부탱의 상징인 '레드 솔(Red Sole)'의 기원이 되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시대 | 주요 착용자 | 주요 목적 |
---|---|---|
10세기 페르시아 | 남성 기병 | 승마 시 안정성 확보 |
17세기 유럽 | 남성 귀족 (루이 14세) | 권위와 부의 과시 |
18세기 이후 | 여성 | 아름다움, 패션 |
중세 유럽 길거리가 오물로 가득해 이를 피하기 위해 굽 높은 신발을 신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패턴(patten)'이나 '초핀(chopine)'이라 불리는 이 신발들은 하이힐의 또 다른 기원으로 여겨지지만, 페르시아 기병의 신발과는 목적과 형태가 조금 달랐습니다.
여성에게로 넘어간 하이힐 👠
그렇다면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하이힐은 어떻게 여성의 신발이 되었을까요? 17세기 후반, 여성들 사이에서 남성의 패션을 따라 하는 '매니시 룩'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들은 담배를 피우고, 머리를 자르고, 남성적인 옷과 함께 하이힐을 신으며 성별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습니다.
이후 계몽주의와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실용성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자, 남성들은 비실용적인 하이힐을 점차 외면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여성들 사이에서는 하이힐이 더욱 가늘고 우아한 형태로 발전하며 여성성을 강조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굳건히 자리 잡게 되었죠.
하이힐의 역사 한눈에 보기
자주 묻는 질문 ❓
전투화에서 시작해 권력의 상징을 거쳐 이제는 여성성의 아이콘이 된 하이힐의 역사, 정말 흥미롭지 않나요? 우리가 무심코 신는 신발 하나에도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