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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라'는 왜 이 순서일까? 한글 자모 배열에 숨은 과학

by 지식탐사꾼 2026. 5. 14.

 

'가나다라'는 왜 하필 이 순서로 외울까요? 우연히 정해진 게 아니라 발음 원리와 한자 학습 전통이 얽힌 결과입니다. 한글 자모 순서를 영어 알파벳, 일본어 오십음도와 비교하면서 그 차이를 풀어봅니다.

 

어릴 때 한글을 배울 때 "가나다라마바사" 하고 노래처럼 외웠던 기억, 다들 있으실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왜 ㄱ이 먼저고 ㄴ이 그 다음일까? ㅏ가 모음의 첫 번째인 건 또 무슨 이유일까? 알파벳도 A부터 시작하는데 그건 또 왜 그런 걸까요. 솔직히 학교 다닐 때는 "그냥 그렇게 정해진 거겠지"하고 넘겼는데, 알고 보니 꽤 흥미로운 배경이 있더라고요.

사실 한글 자모 순서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음성학적 원리와, 조선시대 한자 학습 전통이 합쳐져 만들어진 결과예요. 영어 알파벳이나 일본어 오십음도와 비교해 보면 각자 어떤 논리로 순서가 정해졌는지가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같이 살펴볼게요.

한글 자음 'ㄱㄴㄷㄹ'의 순서 원리

훈민정음 해례본(1446년)을 보면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과 위치에 따라 분류되어 있어요.

어금닛소리(아음), 혓소리(설음), 입술소리(순음), 잇소리(치음), 목구멍소리(후음)의 다섯 갈래로 나뉘는데, 이걸 한자 음운학에서 말하는 오음(五音) 체계라고 부릅니다.

ㄱ이 가장 앞에 오는 이유는 어금닛소리, 즉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으면서 나는 소리이기 때문이에요. 입 안쪽 깊은 곳에서 나는 소리를 먼저 놓고, 점점 입 바깥쪽으로 나오는 소리 순으로 배열한 거죠. ㄴ, ㄷ은 혀가 윗잇몸에 닿아서 나는 혓소리고, ㅁ, ㅂ은 입술에서 나는 순음입니다.

훈민정음의 자음 분류

발음이 만들어지는 위치를 따라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순서예요.

  • 👍 어금닛소리(아음): ㄱ, ㅋ — 목구멍 안쪽
  • 👍 혓소리(설음): ㄴ, ㄷ, ㅌ, ㄹ — 혀와 잇몸
  • 👍 입술소리(순음): ㅁ, ㅂ, ㅍ — 입술
  • 👍 잇소리(치음): ㅅ, ㅈ, ㅊ — 이
  • 👍 목구멍소리(후음): ㅇ, ㅎ — 목구멍

다만 지금 우리가 쓰는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 순서는 훈민정음 원본 그대로는 아니에요.

1527년 최세진이 펴낸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정리된 순서가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한자를 배우는 어린이를 위한 책이었는데, 여기서 각 자음에 한자를 붙여 외우게 한 게 오늘날 우리가 쓰는 자모 명칭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모음 'ㅏㅑㅓㅕ'의 순서 원리

모음 순서는 더 재미있어요. 훈민정음에서는 모음을 천(天, ·) 지(地, ㅡ) 인(人, ㅣ)의 세 기본 글자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세 글자가 서로 결합해서 모든 모음이 만들어지는 구조예요. 동양 철학의 삼재(三才) 사상이 그대로 글자 구조에 반영된 셈이죠.

현재 사전 순서인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를 보면 패턴이 보입니다. ㅏ와 ㅑ, ㅓ와 ㅕ처럼 단모음과 그 이중모음(ㅣ가 앞에 붙은 형태)이 짝으로 묶여 있어요. 그리고 ㅏㅓ는 ㅣ에서 파생된 모음, ㅗㅜ는 ㅡ에서 파생된 모음, 마지막에 기본자인 ㅡㅣ가 오는 구조입니다.

🌿 양성모음과 음성모음
ㅏㅗ는 양성모음, ㅓㅜ는 음성모음으로 분류돼요. 모음조화의 원리 때문인데, '졸졸/줄줄', '반짝/번쩍'처럼 같은 의미의 단어가 모음에 따라 어감이 달라지는 것도 이 분류와 관련 있습니다.

영어 알파벳은 왜 A부터일까

그렇다면 영어 알파벳은 어떨까요? 사실 영어 알파벳의 순서는 한글처럼 음성학적 논리로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약 3,000년 전 페니키아 문자에서 시작해서 그리스 문자, 라틴 문자를 거치면서 거의 그대로 굳어진 역사적 관습입니다.

페니키아 문자의 첫 글자는 '알레프(aleph)'로 황소를 뜻하는 그림문자였어요. 두 번째 '베트(beth)'는 집을 뜻했고요. 알레프와 베트가 합쳐져 '알파벳'이라는 말 자체가 만들어진 거예요. 즉 A와 B의 순서는 발음 원리와는 무관하게 그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에 우연히 그 순서로 배열된 결과인 거죠.

📜 알파벳의 어원
'알파벳(alphabet)'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리스 문자의 첫 두 글자 '알파(α)'와 '베타(β)'에서 왔어요. 그리고 이 알파와 베타는 다시 페니키아 문자 '알레프'와 '베트'에서 유래했고요. 순서가 곧 이름이 된 셈입니다.

영어 알파벳 순서를 외우기 위해 우리가 부르는 ABC송도 사실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노래예요. 그 이전에도 알파벳 순서는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순서로 외우게 된 데에는 인쇄술과 사전 편찬의 영향이 컸습니다.

일본어 '아이우에오'의 순서

일본어 오십음도(五十音図)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어요. 'あいうえお(아이우에오)'로 시작하는 모음 순서와, 'かきくけこ(카키쿠케코)'로 이어지는 자음 결합 순서가 격자무늬로 배열되어 있죠. 이 체계는 한글보다는 오히려 산스크리트어(범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게 정설입니다.

헤이안 시대(794~1185년) 일본에 불교가 깊이 자리 잡으면서 산스크리트 음운학이 함께 들어왔어요. 그 영향으로 모음을 '아(a)-이(i)-우(u)-에(e)-오(o)' 순으로, 자음을 '카(k)-사(s)-타(t)-나(n)-하(h)-마(m)-야(y)-라(r)-와(w)' 순으로 배열한 체계가 자리 잡았습니다. 발음 기관의 위치 순서라는 점에서는 한글과 비슷한 발상이지만, 구체적인 분류 방식은 산스크리트 전통을 더 따르고 있어요.

한글, 알파벳, 오십음도 비교

세 문자 체계를 나란히 놓고 보면 각각의 성격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한글은 가장 체계적이고 음성학적인 원리에 따른 순서를 가졌고, 알파벳은 오랜 역사 속에서 우연히 굳어진 순서를, 일본어는 외래 음운학 영향을 받은 절충적 순서를 보여줍니다.

비교 항목 한글 (가나다) 영어 (ABC) 일본어 (아이우에오)
순서 원리 발음 기관 위치 역사적 관습 산스크리트 음운학
기준 시기 1446년 (훈민정음) 기원전 11세기경 헤이안 시대
정착 문헌 훈몽자회 (1527) 로마자 표기 정착 오십음도 정리
첫 글자 ㄱ (어금닛소리) A (황소 그림) あ (개구도가 큰 모음)
논리성 매우 높음 낮음 (관습) 중간
철학적 기반 음양오행, 삼재 특별한 기반 없음 불교 음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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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가나다라' 순서는 그냥 외우라고 정해 놓은 게 아니라, 발음이 만들어지는 입 안의 위치를 차근차근 따라가는 음성학적 흐름이었어요. 한글이 세계적으로 과학적인 문자라는 평가를 받는 데는 글자 모양뿐 아니라 이런 배열 순서 하나에까지 원리가 살아 있다는 점도 큰 몫을 합니다. 한글의 역사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훈민정음 해례본을 한 번쯤 들춰보시는 것도 좋고, 다른 문자 체계와의 비교가 재미있게 느껴졌다면 비교언어학 입문서 쪽도 흥미로운 선택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