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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족관 횟집과 쫄깃한 광어회, 우럭회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외식 메뉴입니다. 흔히 생선회를 일본 사시미에서 유래했다고 여기거나, 옛날부터 바닷물고기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통념과는 다른 반전이 펼쳐집니다. 고대 기록부터 조선시대 선비들이 맛보았던 회의 모습과 바다 활어회가 대중화되기까지의 과정을 짚어보겠습니다.
1. 회는 일본 음식이라는 오해와 고대 회의 기원
생선회를 일본 고유의 식문화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날고기와 날생선을 얇게 썰어 먹던 회(膾) 문화의 발상지는 고대 중국과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이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경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 향당편에는 회불염세(膾不厭細, 회는 가늘게 썰수록 좋다)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약 2,500년 전에도 날것을 정교하게 썰어 먹는 미식 문화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와 송나라까지 생선회와 육회가 별미로 대접받았으나, 14세기 명나라 시기 기생충 감염과 전염병 유행을 겪으며 날것을 먹는 풍습이 사라지고 익혀 먹는 조리법이 정착되었습니다. 반면 한반도에서는 고려 문신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강물에서 낚은 물고기를 눈처럼 얇게 썰어 먹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을 만큼 자생적인 회 문화가 이어졌습니다.
일본 유래로 오해받지만 우리 전통 식문화에 뿌리를 둔 음식 역사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글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김밥은 정말 일본 음식에서 왔을까? 복쌈과 노리마키의 숨겨진 진실
2. 옛 문헌 속 회(膾)의 정체: 육회와 민물회
조선시대 요리책과 실록에 기록된 회(膾)라는 글자는 광어나 우럭 같은 바닷물고기 회를 가리키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한자 회(膾)의 부수가 고기 육(肉) 변으로 이루어진 것에서 알 수 있듯, 회의 기본 의미는 소고기나 꿩고기 등을 날것으로 썬 육회(肉膾)였습니다. 물고기를 날것으로 먹을 때는 어회(魚膾)라고 구분해 불렀는데, 이 어회의 주류 역시 바닷물고기가 아니라 강에서 잡아 올린 은어, 잉어, 쏘가리 같은 민물고기 회였습니다.

| 구분 | 고려·조선시대 전통 회 | 1980년대 이후 현대 회 |
|---|---|---|
| 주재료 | 소고기 육회, 은어·잉어 등 민물고기 | 광어(넙치), 우럭(조피볼락) 등 바닷물고기 |
| 양념장 | 초간장, 겨자장 (19세기 이후 초고추장) | 초고추장, 고추냉이(와사비) 간장, 쌈장 |
| 유통 방식 | 강가나 산지에서 즉시 채취해 섭취 | 활어차 산소 운송 및 횟집 수족관 보관 |
고추장이 대중화된 것은 18~19세기 조선 후기입니다. 그 이전 수백 년 동안 조상들은 초고추장 대신 식초에 간장과 생강을 섞은 초간장이나 매콤한 겨자장을 곁들여 비린내를 잡았습니다.
유교 예법을 중시한 조선시대에는 제사상에 날고기인 육회와 생간을 올리는 것이 정성의 표현이었습니다. 제사 후 가족들이 음식을 나누던 음복(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습) 문화 덕분에 내륙에서도 날고기를 즐기는 식습관이 이어졌습니다.
3. 조선시대 내륙에서 바다 활어회를 못 먹은 이유
과거에 바닷물고기보다 민물고기 회를 주로 먹었던 원인은 냉장 기술과 운송 수단의 한계에 있었습니다. 바닷물고기는 성질이 급해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죽는 데다 상온에서 살이 빠르게 상해버립니다. 바닷가에서 한양 같은 내륙까지 살아있는 바닷물고기를 수송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내륙에서는 간고등어나 건어물, 젓갈 형태로만 해산물을 섭취했습니다.
정약전이 1814년에 집필한 자산어보(玆山魚譜, 조선 후기 해양생물 백과사전)에는 흑산도 어민들이 청어나 조기 등을 회로 먹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바닷물고기 회는 포구 주민들만 산지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였고, 강가에서 쉽게 잡아 조리할 수 있었던 민물고기가 내륙 회 문화의 중심을 차지했습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자연산 민물고기 생식을 경계합니다. 민물고기에 기생하는 간흡충(간디스토마)이 인체에 유입되면 담도에 기생하며 염증을 유발할 위험이 있으므로, 민물고기는 반드시 익혀 먹거나 수질이 관리된 양식 어종만 소비해야 합니다.
4. 1980년대 수족관과 양식 혁명이 만든 활어회
내륙의 민물회 중심이었던 식문화는 개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바닷물고기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철도와 얼음 공장이 들어서고 일본식 사시미(Sashimi, 숙성 생선회) 문화가 퍼지면서 내륙으로도 바닷물고기를 운송할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횟집에서 살아있는 물고기를 즉석에서 썰어주는 한국식 활어회(活魚膾) 대중화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사이에 완성되었습니다.
1단계 (1970년대 기생충 퇴치 캠페인): 민물고기 생식의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민물회 소비가 줄고 바닷물고기 회로 수요가 이동했습니다.
2단계 (1980년대 활어차와 수족관 보급): 산소 공급 장치가 달린 활어차와 식당용 유리 수족관이 보급되면서 내륙에서도 살아있는 바닷물고기를 유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단계 (1980년대 후반 광어·우럭 대량 양식): 광어와 우럭의 대량 양식이 성공하면서 누구나 합리적인 가격에 활어회를 즐기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한국인들은 수족관에서 살아있는 물고기를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하는 정서와 쫄깃한 식감을 선호하는 입맛을 결합해 독자적인 활어회와 상추쌈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광어 한 점을 상추에 올리고 초고추장과 마늘을 얹어 싸 먹는 방식은 전통과 현대 기술이 만나 약 40년 전에 완성된 식문화입니다.
회의 맛을 살려주는 고추냉이(와사비)의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방법이 궁금하시다면 다음 글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 고추냉이(와사비) 99%는 가짜? 진짜 생와사비 5초 만에 구별하는 4가지 단계
한국인이 회를 먹기 시작한 역사 핵심 요약
5. 자주 묻는 질문 (FAQ)
지금까지 우리가 언제부터 회를 먹기 시작했는지 고대 문헌부터 현대 횟집의 탄생 배경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선조들이 즐기던 은어회와 육회의 전통이 1980년대 양식·운송 기술과 만나 오늘날의 활어회 문화가 완성되었습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심하거나 지속될 경우 반드시 의료 전문가의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